商品詳細情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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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흥보가> 1 : 1. 흥보가 해설(해설:조상현)8:35 2. 초입 - 흥보 쫒겨나는데(창:김소희, 성우향 외) 9:15 3. 흥보처의 탄식 - 흥보 닷냥을 받아 돌아오는데(창:김소희, 성창순, 성우향 외) 8:35 4. 흥보처가 흥보의 매품을 만류하는데 - 흥보 매맞지 않고 오자 흥보처 좋아하는데(창:김소희, 성창순, 성우향 외) 9:25 5. 흥보 놀보집을 건너가는데 - 흥보와 흥보처 죽기로 작정하는데(창:김소희, 성우향, 성창순 외) 14:08 6. 도승이 집터 잡아주는데 - 흥보제비 강남으로 가는데(창:김소희 외) 10:59 7. 제비점고 - 제비노정기(창:김소희, 성창순 외) 8:30 8. 가난타령 - 돈타령(창:성창순 외) 10:00 총 : 79:39 2 : 1. 흥보 둘째 박 타는데 - 흥보 집 짓는데(창:김소희, 성우향, 성창순 외) 13:57 2. 놀보가 흥보집을 찾아오는데 - 놀보 제비후리러 나가는데(창:김소희, 성우향, 성우향, 강종철 외) 16:23 3. 놀보 제비다리 부러뜨리는데 - 놀보제비점고(창:강종철, 조상현, 한농선, 신영희, 조통달, 조남희, 남해성 외) 11:8 4. 놀보 구자내력을 풀어보는데 - 놀보 박 속 노인의 주머니를 채우는데(창:강종철, 조상현, 한농선, 조통달, 신영희, 남해성 외) 11:35 5. 놀보 둘째 박 타는데 - 박 속에서 상여가 나오는데(창:강종철, 신영희, 조상현, 한농선 외) 7:01 6. 놀보 셋째 박 타는데 - 놀보의 개과천선(창:강종철, 조통달, 조상현, 한농선 외) 9:45 총:70:25 * 연주자 : 김소희 성창순 성우향 조상현 강종철 한농선 신영희 조통달 조남희 남해성 김경희 박옥진 * 번주자 : 한일섭 이생강 새 음반명, <명창 흥보가> (구:창극 판소리 <대흥보전>) 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국악FM방송 전문위원) 1. 판소리와 창극 판소리란 고수의 북 반주에 맞추어 한 사람이 몸짓(발림)을 섞어가며 말(아니리)과 노래(소리)로 춘향가, 심청가 등의 이야기를 청중에게 전달하는 공연예술로 소리하는 사람이 혼자서 여러 역할을 해내는 일인 다역극(多役劇)이다. 소리하는 한 사람은 이야기를 청중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꾼, 이야기 속에 나오는 해설자, 그리고 이야기 속에 나오는 각 등장인물의 역할 등을 번갈아 가며 맡게 된다. 판소리판는 소리판을 이끌어 가는 주체인 소리꾼(창자 또는 광대)과 북 장단을 치는 고수와 소리를 듣는 청중으로 구성되지만, 판소리판의 청중은 헛기침도 제대로 못하고 부동자세로 감상해야하는 서양음악의 청중과는 다르다. 판소리 공연에서의 청중은 '얼씨구', '좋다', '으이' 등의 추임새를 통하여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며, 창자와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판을 이끌어 간다. 조선조 후기부터 문헌에 나타나는 판소리는 원래 12바탕이었으나 외설스럽고 조잡한 내용을 가진 바탕은 차차 도태되어, 고종 때에 판소리 연구가 신재효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6바탕을 새로이 정리한 후 현재는 <변강쇠타령>을 제외한 5바탕만이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으며, 이 5바탕 판소리를 '바탕소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승과정에서 탈락한 7바탕은 <옹고집타령>, <배비장타령>, <강릉매화타령>, <장끼타령>, <무숙이타령>, <가짜신선타령>, <변강쇠타령>이다. 판소리는 기록된 음악이 아니라 구두전승의 과정을 거쳐서 발전해 온 민속음악이다. 구두전승의 판소리는 전승지역, 전승계보, 음악적 특성에 의하여 크게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라는 3개의 유파로 구분되나, 조선 말기 이후부터 판소리 명창들의 지역 이동이 심하고 교습지역 및 스승의 변동으로 판소리에 이런 유파의 특성도 희석되고 지역적 연고성이 끊어지게 되어 지금은 다만 전승계보에 따라 그런 특성이 일부 판소리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의 판소리를 이해하기 위한 개념으로는 판소리 유파는 적절하지 않으며, 김연수 명창은 판소리 유파를 따지는 것은 무용한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일제시대만 해도 판소리의 이런 유파적 특성을 지닌 판소리가 전승되고 있는 것을 유성기음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판소리 유파 즉 '제(制)'의 하위개념으로 '바디'가 있는데, '제' 속에 여러 가지 '바디'가 존재하는 양상으로 이해된다. 판소리에는 서양음악의 박자의 개념에 해당하는 '장단'에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엇중모리가 있으며, 판소리의 '조(調)/길'에는 화평하고 담담하고 여유 있는 평조(平調), 점잖고 품위 있고 우아한 우조(羽調)와 슬프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계면조(界面調)가 있다. 판소리는 한 때 창극에 밀려 고전을 하다가, 1968년부터 완창 판소리를 부른 박동진 명창의 업적으로 판소리는 생존의 길을 찾아 현재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20세기 초 서구문화의 유입은 판소리 존립의 기초가 되는 전통사회를 그 근저에서부터 위협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판소리도 생존을 위한 변화를 모색하기 되는 과정에서 판소리를 배역에 따라 분창(分唱)하고, 무대배경과 의상·연기를 추가한 창극이 나타난다. 창극은 연극처럼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각기 배역에 따라 연기를 하면서 판소리를 부르는 연극적 판소리이다. 다시 말하면, 판소리라고 불리는 음악의 매개를 통해 공연되는 연극이다 창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에서 첫 선을 보였다. 1908년 김창환(金昌煥) 등에 의하여 <춘향가>, <수궁가> 등이 창극으로 공연되었는데, 이러한 창극은 원각사 폐쇄 이후에도 경향 각지에서 흥행하였다. 특히 1933년에는 남도 명창을 중심으로 <조선성악연구회>가 구성되고, 본격적인 창극 공연이 잇달았다. 이 시대의 창극무대를 주도하였던 사람들은 흔히 5명창으로 불리는 김창환, 김창룡, 송만갑, 이동백, 정정열 등과 이화중선, 김초향, 김추월, 신금홍, 박녹주, 김소희 등의 여류명창들이었다. 창극의 활성화는 상대적으로 판소리의 위축을 가져왔다. 사사계보를 달리하던 여러 명창들이 한 무대에서 공연을 하게되면서, 지역적인 특징과 동서편의 구별이 줄어들게하는 원인도 되었다. 1950년대의 여성 창극의 전성기인 국극을 거친 후, 1962년에 국립극장 산하에 국립국극단이 창설되었다. 국립국극단은 1973년에 국립창극단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이 음반, 구(舊) 창극 판소리 <대흥보전> 사운드스페이스가 기획 제작하는 이 음반은 1970년대 초(김청만 명인이 북 가락이 한일섭 명인이라고 확인하였으니, 이 음반의 녹음은 한일섭 명인이 돌아가신 1973년 이전이라고 할 수 있다)에 녹음되어 현대음반에 의해 4장의 LP음반과 3장의 카세트 테이프로 출반된 적은 있으나, CD음반으로 출반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30여년만에 CD음반으로 빛을 보게되어 반갑기 그지없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녹음의 창극음반은 기대하기 힘들다. 많은 인원 동원과 비용 지출로 편이성과 상업성이 없어 기획.제작하는 음반사가 없기 때문에, 과거에 출반된 유성기음반과 LP음반의 재발매에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 이 음반을 고증 할 수 있는 당시의 자료는 미미하다. 이 음반에 관여한 몇 사람를 직접 만나 뵈었지만, 별로 기억하는 것이 없었다. LP음반(현대음반주식회사 : HSJ민16 - 1~4)으로는 1979년에 4장으로 제작된 적이 있고, 카세트테이프(현대음반주식회사 : HSJ민16(3MC)로는 1979년과 1984년에 제작된 적이 있다. 표지에는 조상현(놀부) 명창과 남해성(놀부처) 명창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고, 창자는 도와주신분이라는 이름으로 김소희, 조상현, 강종철, 성창순, 성우향, 김경희, 박옥진, 남해성, 한농선, 신영희, 조남희, 조통달, 모두 12명이 적혀 있으나, 이 음반의 창자로 확인된 사람은 모두 10명으로 박옥진, 김경희 명창의 목소리는 과문한 탓으로 확인하지 못하였다. CD음반의 트랙마다 확인된 연주자는 밝혀놓았지만, 확인하지 못한 창자는 누구 누구 외라고 표시하였다. LP음반이나 카셋트에는 반주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카셋트 뒷면에는 <완전 대흥보전>이라고 적혀 있고, 협성 5대판소리 소개라는 이름 하에 창극 판소리 <완전 대춘향전>(전5매조), <완전 대심정전>(전4매조), <완전 대흥보전>(전3매조), <장화홍련전>(전2매조), <수궁가>(전2매조), 적벽가를 광고하고 있어, 모두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음반의 처음에는 흥보전 이야기를 요약하여 대금 반주 하에 조상현 명창이 해설(9여분)을 한다. 내용은 이 음반은 협성음반의 기획으로 제작되었으면, 전편은 창으로, 후편은 창극으로 수록된 것이 특색이라고 설명하면서, 흥보전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전편이라는 것은 이 음반의 CD 2의 2번째 트랙 중간까지로 추정된다. 전편에는 주로 김소희, 성창순 성우향 명창 들이 출현하는데 비해, 후편에는 조상현, 강종철, 한농선, 신영희, 조통달, 조남희, 남해성 명창 등이 출현하여 전, 후편의 창자가 다르다. 창극이라고 설명한 후편에는 전편에 비해 창자가 많이 등장하고, 주고 받는 대사가 많은 연극적인 요소가 보이고, 전편에는 반주가 북에 대금이 조금 등장하지만, 후편에는 대금, 가야금, 아쟁의 반주가 많이 등장한다. 보통의 창극 음반은 배역에 따라 창자가 정해지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 배역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지만, 이 음반은 전편과 후편의 배역이 완전히 틀린다. 각 편에서도 배역이 조금 틀리기도 한다. 따라서도 전편, 후편이 별도로 녹음되었으면, 조상현 명창의 해설은 모두 녹음한 후에 그 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음반에는 반주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전편에는 대금 반주도 나오지만, 북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면, 후편에는 북 반주에 대목에 따라 대금, 가야금, 아쟁이 독주 또는 합주로 나온다. 북 반주는 김청만 선생님이 한일섭 선생님이라고 확인하여 주었고, 대금 반주는 이생강 명인이 직접 듣고는 본인이 5관청 산조대금으로 연주하였다고 확인해 주었으나, 다른 연주자는 기억에 없다고 하였다. 4. 창자 창자로 확인된 분은 10명뿐이지만, 원 음반에 기록된 12명의 프로필을 모두 적어 보았다. 4.1 김소희(1917년 - 1995년 : 전북 고창 출생) 유랑 가극단의 가설포장 안에서 들리는, 이화중선 명창의 심창가 중 "추월(秋月)은 만정(滿庭)허여......"로 시작하는 느린 진양조에 간장을 녹이는 진계면조의 구슬픈 소리를 듣고 소리의 길로 들어선 김소희 명창. 1930년에 송만갑 문하에 들어가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김소희 명창은 국창이라는 수식어로도 부족한 판소리의 대가였다. 16살에 음반 취입한 이래, 뛰어난 무대 매너와 맑은 소리로 관객들을 사로잡았으면,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정열을 기울였으며,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우리 소리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었다. 김소희 명창은 판소리 뿐 만 아니라 다방면의 예술에 뛰어나, 그의 서예 실력은 국전에 입상할 정도로 명필이었다. 김소희 명창은 1989년(당시 73세)에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에 녹음을 많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아쉬워하였고, 50대 중반의 소리가 제일 좋은 것 같다고 말씀한 적이 있다. 이 음반의 소리는 김소희 명창의 50대 중반의 소리로, 이 음반의 후편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전편에서는 도창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4.2 조상현(1939년 - : 전남 목표 출생) 12살 때부터 정응민에게 소리를 배웠고, 후에 서울로 상경하여 박녹주에게 소리를 배우며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여 완벽하게 조화된 연기력과 타고난 성량을 발휘하여 무대 주연을 도맡아 하였다. 창극무대는 물론 라디오방송, TV출연으로 그이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서편제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박유전제의 소리를 정재근 - 정응민으로 이어받은 명창으로 강산제(보성소리)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명창으로 평가받고 있다. 82년 제2회 국악 대상을 수상했으며, 91년에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현재 전남도립 남도대학 국악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후학양성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 최고의 남자명창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최고명창에 걸맞은 음반이 없는 것이 아쉽다. 4.3 강종철(1923년 - : 전북 김제) 송만갑 제자인 윤두로부터 판소리를 배웠고, 김연수 명창으로 열사가를, 정응민 명창으로부터 수궁가와 심청가를 배웠다. 국립창극단에서 활동한 바 있다. 4.4 성창순(1934년 - : 전남 광주 출생) 16세에 김연수 창극단에 입단하여 연국활동을 하였으며, 공기남 선생으로부터 심청가를, 정응민 선생으로부터 강산제 판소리 심청가, 춘향가, 수궁가를 배웠으며, 박록주 선생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1978년에 전주대사습 판소리 장원 대통상을 수상하였으며, 1991년에 강산제 판소리 심청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4.5 성우향(1933년(호적:1935년) - : 전남 화순 출생) 10살 때 안향년 명창의 부친인 안기선 선생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여, 정응민 명창으로부터 흥보가를 제외한 네바탕을 배웠다. 1977년에 전주대사습 판소리 장원 대통상상 수상(당시 2위 성창순, 3위 안향년), 1988년에 KBS국악대상을 수상하였다. 성우향 명창은 보성소리의 모범을 가지고 있으며, 보성소리를 가르키는 명창 가운데 가장 많은 제자를 두고 있다. 2002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4.6 김경희(1920년 - 1989년(?) : 전북 고창 출생) : 음반에서 소리를 확인하지 못하였음. 김소희 명창의 동생으로, 김여란, 정권진, 김소희 명창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동생 김정희와 함께 창극, 국극 활동을 많이 하였다. 4.7 박옥진(1934년 - : 전남 진도 출생) : 음반에서 소리를 확인하지 못하였음. 12세 무렵에 아성창극단에 입단하여 국악활동을 시작하였다. 14-5세때 김연수 선생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으며, 전황 선생으로부터 춤을 배웠다. 젊을 때에는 뛰어난 미모와 미성으로 여성 국극단에서 공주 등의 역할로 장안에서 인기를 누렸던 적이 있었다. 해금 연주자 김성아의 모친으로 70년대 후반에 국악계를 떠났다. 4.8 남해성(1935년 - : 전남 광양 출생) 강도근 명창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김소희, 김연수, 박초월 명창으로부터 흥보가를 배웠다. 목을 곱게 발성한다. 박초월 명창의 스타일이 짙게 배어 있다. 1981년 박초월제 수궁가 보유자 후보자로 지정되어 있다. 4.9 한농선(1934년 - 2002년 : 일본 동경) 가야금의 명인 한성기의 무남독녀이다. 동경에서 태어났으나, 목포에서 자랐다. 박초월, 발록주 명창으로부터 흥보가, 수궁가를 배웠다. 미모의 한농선 명창은 영화 <홍살문>, <한> 등에도 출연한 바 있다. 한농선 명창은 동편의 끗끗하고 우조의 소리를 맛깔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2002년 초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지만, 동년 4월 8일 심근경색으로 타계하였다. 4.10 신영희(1942년 - : 전남 진도) 어릴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여, 장월중선, 박봉술, 강도근 김소희 명창 등으로부터 판소리를 사사하였다. 방송이나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대중적 스타인 신영희 명창은 1991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준보유자로 지정되었다. . 4.11 조남희(?) 조남희 명창에 대해서는 밝히지를 못했다. 4.12 조통달(1946년 - : 전남 익산) 박초월 명창의 외조카이자 양아들이다. 소리에 통달하라고 박초월 명창이 지어 준 이름이다. 정응민 명창으로부터 심청가를 배워, 보성소리의 한 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 판소리 신동 유태평양 군을 제자로 두어 매스컴에 각광을 받은 바 있다. 1988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준보유자로 지정되었다. 5. 반주자 이 음반에는 반주자로 북, 대금, 가야금, 아쟁이 등장하고 있으나, 실제 만난 연주자는 기억하는 것이 없고, 북 반주는 김청만 명인이 한일섭 북 가락이라고 확인하여 주었고, 대금은 이 음반을 직접 들은 이생강 명인이 당신이 5관청 산조대금으로 직접 연주하였다고 확인하여 주었으나, 다른 연주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였다. 5.1 한일섭(1929년 - 1973년 : 전남 화순 출생) 어려서 매형이자 성창순 명창의 부친인 성원목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한일섭 명인은 남해성 명창의 남편이자 성창순 명창의 외숙이다. 태평소, 아쟁, 북 등 여러 악기에 능하였으면, 신민요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5.2 이생강(1937년 - : 일본 동경) 8.15 해방 때 한국으로 돌아와 부산에서 살았다. 부친으로부터 단소, 피리, 당적, 태평소 등을 배웠으며, 11세 때 대금산조의 명인 한주환를 만나 본격적으로 대금을 배웠다. 못 부는 관악기가 없을 정도로 관악기의 달인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이다. * 연반주자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확인하여 밝혔지만, 30여년 전의 목소리와 소리로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이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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